제목    [홍보용/참고자료] 전노련 소개 및 활동자료
  글쓴이 전노련 글쓴날 2004-02-16 14:56:11 조회 4778

전국노점상연합은 1988년 결성이래 17년의 역사를 가진 단체로서 노점상조직의 대통합으로 2004년 2월 현재 전국에 70여개 지역연합회 1만여명의 회원조직을 눈앞에 둔 상황입니다.

1. 아래는 참고하시면 좋은 자료들 목록입니다.

'노점상에 대한 한국정부의 대응'/신희철(전노련 조직차장)
2004/전국노점상연합
한국정부의노점상정책.hwp

'노점상 현황및 특성과 운동방향' / 최인기(전노련 사무처장)
2002 / 전국노점상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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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점상에 대한 인도정부의 정책'/인도정부(번역 및 발췌: 신희철 전노련 조직차장)
2003/전국노점상연합
인도.hwp


2. 아래는 짧게 정리한 전노련 소개글입니다.

NFSVK is a national organization that struggles to protect the livelihoods and human rights of street vendors and to resolve the contradictions inKorean society.

전국노점상연합은 노점상의 생존권과 인권을 보호하고 한국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전국적 조직입니다.

During the 1980s, Korean street vendors suffered countless crackdowns by all knds of enforcement authorities such as ward officials, municipalofficials, police, crackdown parties, public and civilian services almostall of them are from gangsters. Excessive and violent crackdowns drove a street vendor to death during the IPU(Inter-Parliamentary Union) general assembly in 1983. About 1,500 street vendors organized strong protest demonstration in front of the metropolitan city hall, which was the united truggle of street vendors and became the starting point of organizational
movement of street vendors of Korea. Afterwards, street vendors activists of Korea organized CSVFK(City Street Vendors' Federation of Korea) to cope with severe crackdowns under the cloak of 1986 Seoul Asian Games.

1980년대에 한국 노점상들은 구청 공무원, 시 공무원, 공권력, 단속반, 대부분이 직폭력배 출신인 민간용역 같은 관에 의해 온갖 종류의 핍박과 셀 수 없는 속을 당했습니다. 1983년 국제 의회 연맹 총회 기간에 발생한 과도하고 력적인 단속은 한 노점상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대략 1500며의 노점상들이 울시청 앞에서 강한 대응 투쟁을 진행는데 이는 조직된 노점상들의 투쟁이었고 국 노점상들의 조직운동이 태동이었습니다. 이후, 한국 노점상 활동가들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을 구실로 자행되려 한 대대적인 단속에 대응하기 위하여 도시노점상연합을 조직하였습니다.

CSVFK had fought to gain rights to live against government's suppression and participated in the protest of June and the Worker's Big Struggle of July & August in 1987, which is the symbol of democratization of Korea. And this protest enabled Korean street vendors depend their own rights to live against the regime's suppression under the cloak of 1988 Seoul Olympic
Games. On 13th June 1988, the street vendors came together and held "Convention to Protest the Street Vendors' Right to Live". Thorough this convention, Korean street vendors confirmed their solidarity with the national-democratic movements of Korea and at last organized the national organization, NFSVK on October 1988.

도노점상연합회는 정부의 탄압에 대항하여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싸웠으며 한국민주화의 상징인 6월 항쟁과 1987년 7,8월 노동자 대 투쟁에 참여하였습니다.이는 한국 노점상들로 하여금 1988 서울 올림픽을 빌미로 한 대대적인 정부의 탄압에 대항하여 생존권을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는 자각을 일깨워주었습니다.
1988년 6월 13일, 노점상들이 단결하여 노점상 생존권 수호대회를 진행했습니다. 이 대회를 통해 한국 노점상들은 한국의 전국적, 민주적 운동을 통한 연대를 확신하였고 마침내 전국 조직인 전국노점상연합을 1988년 10월에 결성하였습니다.


3. 아래는 한국의 노점상 발생배경과 노점상운동에 대한 소개글입니다.

<노점상운동>

노점상의 성격은 ① 상행위의 역사적인 원형으로서 노점상, ② 근대화 과정에서 과도기적으로 존재하는 비공식부문으로서 노점상, ③ 경기변동에 의해 방출된 실업자들의 대체 고용시장으로서 노점상, ④ 도시경제를 구성하는 유통기구의 한 단위, ⑤ 도로경관문화로서 노점상, ⑥ 사회적 관계로서 노점상 등으로 규정해 볼 수 있는데 아래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노점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문제와 이에 대한 정부의 입장, 노점상운동의 현황을 다루도록 하겠다.


:: 한국 전쟁과 한국 자본주의 발전/산업화 과정에서 발생한 노점상

한국전쟁과 6-70년대 한국 자본주의 발전/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유입된 민중들은 달동네나 판자촌을 중심으로 거주하면서 가내수공업, 일용직이나 노점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곧 근대공식부문이 충분하게 성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시로 이입한 많은 인구들이 활동하고 있는 공식화되지 못한 영세・불법적 사업부문이 곧 비공식부문인 것이며 이때 노점상의 비공식성(informality)은 법적인 기준, 즉 허가냐 무허가냐, 세금을 내느냐 그렇지 않으냐, 고용관계법 등의 적용받는 사업규모냐 아니냐 등의 기준에 의해 분류된다. 실제 198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서울 고용인구 중 많게는 60퍼센트가 이러한 비공식부문에 종사할 정도로 노점상으로 대표되는 비공식부문은 광범하게 존재하였다. 당시의 비공식부문은 학력이 낮고 기술과 자본이 불충분하며 사회적으로 상층 이동할 기회가 박탈된 도시하층민들이 임시적으로 고용되는 취업기회를 제공해주었는 동시에, 도시의 하층민을 위한 값싼 생필품을 제공해주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도시비공식부문의 활동은 비록 공식성과 적법성을 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정부나 시민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 1980년대 이후 ‘불법’적인 존재요 단속해야할 ‘대상’으로 취급당해옴

그러나 1980년대 경제발전이 가속화되면서 노점상은 그 숫자 면에서 획기적으로 줄지 않았다 하더라도 도시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영향은 현저히 줄어들어 도로를 점거한 채 불량제품을 불법적으로 판매하는 노점활동이 도시의 가로경관과 도시교통흐름을 방해하고 도시유통질서를 해치는 측면이 점차 크게 규정되기 시작하였고, 그와 더불어 정부당국에 의한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는 정책기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특히 88올림픽 등의 대규모 국제 행사가 치루어지면서 노점활동은 도시경관정비를 위한 대대적인 정비의 대상이 되었으며 이는 80년대 말 가로판매대 등 일부 노점상들을 양성화하는 방향으로 정부 통제 하에 두었던 사례를 제외하고는 민간용역까지 발주하여 대대적으로 단속과 통제를 자행하고 있다.


:: 일상적 불안정고용과 사회적 안정망의 부재로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는 노점상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지만 노점상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그나마 쥐꼬리만한 생게비도 벌 수 없는 민중들이 소규모 자본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는 방편이다. 더욱이 이는 현재의 한국상황처럼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67%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고용이 불안정한 상황이고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 사회보장제도/사회안정망이 전혀 비현실적인 상황에서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편 중 하나다.

실제 지난 IMF이후 노점상이 대거 늘어난 것이라든지 정부가 추진했던 자활사업, 취업/전업 상담소, 실업수당 등의 실패와 청년실업의 급증, 장기적인 경제불황으로의 진입 등으로 다시 노점상이 늘어나는 현실에서도 알 수 있다. 실제 전국노점상연합이 조사한 바에 의하면 여전히 노점상 중 대부분이 40-60대임에도 최근 2-30대 노점상들이 결과적으로 고학력 고학력 노점상이 늘어나고 부부가 함께하는 노점상이라든지 노점상 중 70%이상이 여성이다.


:: 한국의 노점상운동

1983년 IPU(국제 금융회의) 개최시 노점상을 죽음으로 몰고가자 개별화된 노점상 1천 5백여명이 강력한 시 청앞 항의 투쟁을 전개한 이후, 곳곳에서 노점상 생존권 대책위원회, 노점상 복지협의회 등 조직적 활동이 일어나게 되었는데, 이렇게 산개해 있던 조직이 1986년 아시안게임으로 강력한 노점 단속에 대응하기 위해 도시노점상연합회로 결성되었다.

한편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예고된 탄압에 맞서 노점상 탄압 반대 투쟁의 대중적 준비를 하기 시작한 도노련은 마침내 전면 단속의 예고 아래 ‘6.13생존권 수호 결의 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대회는 조직된 노점상들이 주체적으로 나섰고, 민중운동세력과 연대하여 정권의 반민중성을 폭로하여 노점탄압을 격파한 대회였다. 6.13생존권 수호 결의 대회는 노점상연합의 전국 조직의 전망을 갖게 하였으며 그 성과로 그해 10월에 전국노점상연합회가 결성되었다.

전노련은 이후 자체 정비와 조직사업, 활동들을 통해 전국노점상연합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국빈민연합 결성에 함께하여 한국 빈민운동의 구심 중 하나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2002년 아시아노점상대회 참가를 계기로 2002년 11월, 국제노점상연합 발족식에 참가하면서 세게 노점상 연대운동, 빈민 연대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이외에 관련 자료나 활동 사진들은 전노련 홈페이지(http://www.nojum.org)의 문서자료실, 사진자료실, 국제연대게시판을 통해 구하시면 됩니다.



[자료] 노점상정책에 대한 전노련 발제문(1999년 판)
한국사회포럼/청계천의 친환경적 친인간적 개발과 노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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