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의 하루

 

        늦가을 편지

 

                                                                           임채희(종로회원)

 

벌써 가을도 다 저뭅니다. 거리의 나무들이 노랗게 물드는 듯싶더니 나뭇잎이 하나둘 거리로 쏟아져 내립니다. 언제나 거리엔 삭막함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도 이렇게 서늘한 바람에 나뭇잎이 하나둘 지는 것을 보고 있으면 이따금 시적감흥이 일어납니다. 그러한 동시에 언제나 우리 노점동지들의 고단한 삶이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그렇지만 전쟁 중에도 참호안의 평화가 잠시라도 주어지듯이 우리 노점동지들에게도 늦가을 오후 낙엽의 거리는 잠시나마 여유를 주나 봅니다. 가끔씩 주변의 형제들과 둘러앉아 따뜻한 말로 막걸리잔 나누듯 그렇게 가을 마지막 모습을 바라봅니다.

 

이렇게 우리 노점형제들이 고단한 삶 가운데서도 긴장을 풀고 내일을 생각하며 희망을 말해봅니다. 이제는 겨울 맞을 준비도 해야겠지요. 사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노점동지들이야 말로 이 사회에서 가장 건강하고 가장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집단이 아닌가 싶습니다. 언제나 긴장된 시간 속에서 살아가며 또한 가난하고 무시 멸시 당하면서도 당당하게 거리에 서서 언제나 살아 움직이며 실천하고 자신들의 생존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때문입니다. 우리 노점형제들은 비록 다 살아갈 길이 없어 거리에 나왔지만 그래도 이 거리에서 진실되고 정직하고 참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지금도 거리엔 서늘한 바람에 나뭇잎이 하나 둘 집니다.

저에게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갑니다. 나는 어쩌다 이렇게 거리에 나왔나, 이 고단한 삶속으로 들어왔나 생각해봅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거리의 형제들처럼 달리 살길이 없어 거리에 나온 듯 합니다. 무슨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 똑똑하지도 못하고 마땅한 활동의 공간도 없고 또 거리에서 장사하면 먹고사는 일이야 해결할 수 있겠지 하며 갖은 생각 속에서 거리로 나선 듯 합니다. 그렇지만 막상 거리에 나서보니 왜 그리 힘들고 고단하던지 언제나 거리에 선다는 것 자체가 긴장의 나날이었고 투쟁의 연속이었습니다. 예전에 겨우 책자나 뒤적이며 골방의 샌님처럼 살아온 노동자로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아남은 사람이 진짜 거친 거리의 삶에 적응하기란 늘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다른 노동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어지고 우리 노점동지들처럼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거리에서 물건을 파는 노점상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오년이란 세월이 흐르다 보니 어느새 저도 모르게 진짜 노점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젠 장사 좀 하는 날엔 기분이 좋아져 주위의 형제들과 어울려 술도 한잔씩 합니다. 그렇지만 20년, 30년 거리에서 청춘을 다 보낸 선배노점형제들에 비하면 진짜 노점상 노릇할려면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하겠지요.

 

오늘 갑자기 거리에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면서 옛 생각에 젖어 보았습니다. 이제 차분하게 겨울 맞을 준비를 해야겠지요. 고단한 삶에 시적인 감흥도 잠시 스쳐가나 봅니다. 추운 겨울 생각 만해도 찬바람이 붑니다. 그래도 우리 거리의 노점동지들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가야겠지요.

 

부의장님 잘 지내세요.

 

                                                                        2004년 1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