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과 철학

 

               웃   음

 

 

                              김경윤(『한국철학의 이 한 마디』저자)

 

 

어느날 그는 별안간 깨달았다.

자신이 오랫동안 더 이상 웃지 않았음을.

그리고 이제 그동안 웃음을 잃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다.

 

그는 안다. 더러 많은 죄를 지었고,

더러 돈을 벌기도 하고, 더러 땅을 찾기도 하고, 짐승처럼 일에 쫓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웃고 싶다.

옛날에는 호탕하게 잘 웃었다.

그리고 옛날처럼 지금도 웃어보리라고

결심하고 웃었다.

 

에리히 케스트너의 시 <완전히 쓸데없는 웃음>의 일부이다. 시인은 웃음을 잃은 현대인에게 웃음 자체의 회복을 노래한다. 그랬지. 언젠가부터 우리는 호탕하게 웃는 법을 잃어버렸지. 웃음도 여러 가지라던데…….

 

씁쓸하게 웃는 고소(苦笑), 아첨하듯 웃는 미소(媚笑), 비난하듯 웃는 비소(非笑), 코로 웃는 비소(鼻笑), 비웃는 조소(嘲笑), 차갑게 웃는 냉소(冷笑) 이 따위 웃음은 웃음도 아닌데, 생각해보면 우리의 웃음의 대부분이 이에 속하는 것 같다.

 

부드럽게 소리 없는 웃는 미소(微笑), 소리 내서 크게 웃는 가가대소(呵呵大笑), 터지듯이 웃는 폭소(爆笑), 입을 크게 벌리고 떠들면서 웃는 홍소(哄笑) 등이야말로 웃을만한 가치가 있는 웃음이지. 이렇게 웃어야 진짜 웃음이지. 살맛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웃는 법이지.

 

며칠 전 가족들과 아침식사를 하다가, 아이들이 밥상머리에서 돌아다니며 장난하는 것을 보다가, 밥은 안 먹고 컴퓨터 오락을 하겠다며 고집피우는 것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러버렸다. 예전 같았으면 사랑스러운 눈으로 조용히 웃고 말았을 터인데. 작은 밥숟가락에 반찬을 올려 쫓아다니며 먹여 주었을텐데. 나는 금세 화를 풀지도 못하고 아이들에게 종일오락금지령을 내리고 직장으로 나와 버렸다. 저녁이 되어야 깨달았다. 그날이 맏아들의 생일이었다는 것을. 아이는 그날 하루 종일 오락을 할 수 있도록 전날 저녁에 허락을 받았다는 것을. 그리고 바로 그 아이가 그렇게 놀고 싶어 했던 오락CD를 내가 선물로 사줬다는 것을.

 

웃음을 잃은 것은 마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활의 문제다. 삶의 조건의 문제다. 나의 삶은 웃음을 잃을 만큼 강퍅해지고 팍팍해진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웃음을 되찾으려면 마음을 고쳐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바꾸어야 한다.

 

그날 저녁 나는 전화로 맏아들에게 사과를 했다. 그런데 아이는 하루 종일 오락도 하지 못하고 있었으면서도 나에게 “아빠의 마음 다 알아요. 저 괜찮아요. 지금부터 하면되지요. 오락은.”이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더니. 나는 집에다가 치킨 한 마리를 주문해주며, 슬며시 웃을 수 있었다. 아직은 회복할 시간이 있구나. 아이와의 관계도, 나의 웃음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