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노점상들 ‘뒷길서 길을 잃다’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경향신문]
ㆍ서울시 ‘깨끗한 거리’ 방침에 이면도로 쫓겨나…“손님 줄어 개시도 못해” 한숨만
지난 15일 서울 창경궁을 따라 500m쯤 이어진 ‘만물거리’(창경궁로). 종로 쪽 입구에 ‘창경궁로 노점 특화거리’라는 현수막이 붙은 길 양쪽에는 노점 판매대와 좌판 100여개가 늘어섰다. 종로4가에서 집단 이주해 지난 6일 영업을 재개한 노점상들이다. 추워진 날씨 탓일까. 먹거리·옷·잡화점이 뒤섞인 거리엔 군데군데 빈 노점이 보이고 행인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장사꾼이 춥다고 안 나오겠습니까.” 음료를 파는 박모씨(66·여)는 “사람들이 통 없다. 자리를 옮기고 며칠째 개시도 못한 이가 많다”고 말했다. 예전에는 하루 3만원어치는 팔았는데 지금은 7000원어치 팔기도 어렵다고 했다. 디자인이 통일된 새 판매대 값으로 낸 150만원이 당장 부담스러운 표정이다.
서울시가 ‘걷기 편하고 깨끗한 종로’를 만들겠다며 지난 10월 종로4가 150개 노점상을 옮겨 놓은 이면도로는 썰렁했다. 서울시가 관광코스로 육성하겠다는 특화거리는 아직 요원한 세상이었다.
창경궁로 노점상 고모씨(61·여)는 “일단 장사는 시작됐다고 알려야 해서 판매대를 들여놨지만 아예 안 나오는 사람도 있다”며 “호떡 장사는 20㎏ 단위로 밀가루반죽을 떼 와야 하는데 이렇게 사람이 안 다니니 얼마 팔지도 못하고 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종로3가에 남아 있는 20여개 노점상도 맘이 무겁기는 매한가지다. 조만간 국일관·낙원상가 주변 뒷길로 옮겨야 하기 때문이다. 꼬치를 팔던 김모씨(50)는 “그쪽으로 옮기면 사람들이 일부러 오지는 않을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다녀도 될까 말까 한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노점상은 금전통을 들어보이며 “오늘도 2000원 벌었는데 뒷골목으로 들어가면 아예 그만두겠다는 사람도 많다”며 “청계천 노점 정리도 그랬고 눈요기하려고 우리 같은 사람은 죽으라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지난 6월 종로2가 90여개 노점상이 관철동 ‘피아노거리’로 옮긴 뒤 노점상들의 ‘집단 이주’는 진행형이다.
시민들은 “종로가 깨끗해지고 소통이 좋아질 것 같다”(대학생 한모씨·26), “편하다는 생각보다는 북적대는 노점상이 없으면 종로가 종로 같지 않을 것 같다”(이인수씨·25)고 견해가 엇갈렸다. 서울시의 일정표대로 삶터를 뒷길로 옮긴 종로 노점상들의 겨울은 춥기만 하다.
<황경상기자 yellowpi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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