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이지만 영등포시장은 한산하기만 하다. ⓒ최재원기자
영등포시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역사다. 일제시대부터 이어져온 서민들의 끈질긴 삻의 궤적이며 피난민과 영세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영등포시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상인들과 그 가족을 넉넉히 품어안으며 서울 서남부 상권의 대명사로 불려왔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도 고향집 같은 정겨움과 옛 추억을 선사했다.
하지만 이제 영등포시장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대형유통센터들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본지 문화저널21은 30일 오전 우리나라 재래시장의 대명사인 영등포시장을 찾아 추석을 맞은 시장 풍경을 담았다.
"추석 대목?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힘들어"
추석 연휴가 코 앞으로 다가온 30일 오전. 영등포 시장은 추석 준비로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상인들이 전을 부치고 가판마다 병어나 숭어 등 제수용품 생선들도 즐비하게 늘어섰다. 찜통에서 막 꺼낸 송편에 기름칠을 하는 상인들의 손길도 분주했다. 그러나 손님은 썰렁하리 만큼 없었다.
생선을 파는 장추자(70) 할머니는 "올해는 유독 사람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힘들어. 작년보다 훨씬 없어. 옆에 이마트가 생기고부터는 장사가 더 안돼." 하지만 할머니는 혹시 모를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홍어를 얇게 잘라내는 손길을 멈추지 않았다.
전을 파는 한 상인은 "그래도 작년만 해도 사람들이 북적이기라도 했는데 올해는 그런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개장 "우리같은 서민들 어찌 살라고"
영등포 시장 상인들은 영등포역 부근에 경방 '타임스퀘어'가 생긴 후론 죽어있던 상권이 아예 메말라버렸다고 입을 모았다.
과일을 파는 한 상인에게 손님이 많냐고 물으니 "보면 몰라요? 없어요"라며 딱 잘라 말했다. "바로 옆에 대형 마트가 생겨서 손님이 다 그리로 가버리고 없어요. 대형마트가 생기면 서민들이 먹고 살기가 힘들어요." 그는 대형마트가 있는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재래시장 사무실에서 만난 정종도 영등포재래시장상인연합회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 돈 내고 장사를 하겠다는데 뭐라 할 수 있겠느냐"면서도 "재벌기업은 사회적 책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골목 상점까지 차지해버린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명절 때면 시장 한 바퀴를 돌며 상인들을 격려했는데 올 추석에는 상인들 얼굴 보기가 미안해 사무실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며 연신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시장 안으로 좀 더 깊숙이 들어가자 곳곳에 문을 닫은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정 회장의 말에 따르면 올 들어 폐업한 점포만도 15곳. 시장 안 노점도 470곳에서 320여 곳으로 30%이상 줄었다고.
"인생을 배우려면 재래시장으로 와야혀"
그래도 명절은 명절이다. 재래시장을 찾은 시민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좀만 더 줘", "이 정도면 많이 준겨." 물건값을 에누리하느라 실랑이하는 상인과 시민의 얼굴엔 재래시장의 정이 묻어났다. 한 상인은 손님에게 야쿠르트를 건네기도 했다.
제수준비를 위해 시장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 "재래시장은 물건 값을 깎을 수도 있고 사람 냄새가 나서 좋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는 시장에서 산 물건들이 주렁주렁 들려 있었다.
나물을 팔던 한 아줌마는 "요즘 젊은 사람들, 인생을 배우려면 재래시장으로 와야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말에 물건을 고르던 한 손님은 "맞는 말이야"라며 맞장구를 쳤다.
분주하게 전을 부치던 한 상인은 "잘하려고 하는데도 사람이 없잖아. 하긴 오늘은 전이 많이 안 나는 날이기도 해. 내일은 잘 되겠지 뭐." 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