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장익상 특파원 =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들이 대형 공동묘지를 집으로 삼고 사자(死者)들과 동거하는 기묘한 생활이 펼쳐지고 있다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가 31일(이하 현지시간) 할로윈 데이를 맞아 보도했다.
마닐라 인근에 위치한 `노트', `북마닐라묘원' 등 대형 공동묘지는 무려 5만명에 이르는 빈곤층이 생활하는 터전이 됐으며 따라서 젊은이들이 결혼하고 그들로부터 새 생명이 태어나는 동시에 숨진 이들이 묻히는 장이 됐다는 것.
특히 쓰레기와 하수로 범벅된 비좁은 묘지 사이를 비집고 다녀야 하고 물을 길어다 먹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이곳에서 거주하는 주민들은 공동묘지가 무척 안전하고 조용한 데다 돌로 된 관 위에서 누워지내니 시원하기까지 하다면서 쉽게 거처를 옮길 의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곳의 주민들은 또 인근 마을에서 불법으로 전기를 끌어다 쓰는 바람에 이를 단속하려는 시청 직원들과 마찰을 빚기 일쑤이며 종종 나타나는 귀신에 놀라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이곳에서의 삶이 마닐라 시내의 대표적인 슬럼가 `톤도(Tondo)' 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현재 마닐라에 거주하는 1천만명 가운데 약 20%는 홈리스이며 이들중 대다수가 슬럼가에 모여사는 까닭에 범죄와 각종 전염병이 창궐하고 있는 형편이다.
`노트' 공동묘지에 살고 있는 멜리 솔리먼(62)씨는 "어느날 밤에 숨진 모자가 나타났고 이들중 어머니는 온통 하얀 색이었으며 말을 하지 못했지만 목이 마르다는 표시를 해 물을 가져왔더니 사라졌었다"며 "이곳에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영혼들이 눈에 띈다"고 말했다.
솔리먼씨는 "귀신들을 만나도 그다지 놀라지 않는데, 정작 내가 두려운 것은 (힘겨운) 삶이다"고 덧붙였다.
공동묘지의 삶에 대해 전문가들은 궁핍한 삶에도 원인이 있지만 죽음에 대해 남다른 태도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역사가인 알레한드로 로체스씨는 "대부분의 필리핀인들은 누군가 죽었을때 그저 나보다 조금 앞서 갔다는 의미에서 `dead' 보다 `departed'라는 표현을 쓴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