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 나면 집값과 땅값이 폭등하는 한국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다. 10여년 전 해비타트로부터 거의 무상으로 주거지를 제공받은 저소득층이 갑자기 부동산 거부가 될 행운을 잡은 것. 이 봉사단체는 하도 어이가 없어 집을 줘야 할지, 이익금을 환수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군 백석면에 있는 ‘해비타트 빌’에 13년째 거주하고 있는 정모(54) 씨, 2008년이면 내집마련의 꿈을 이룬다는 생각에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 현재 정씨가 사는 집을 포함해 10여세대는 차상위계층을 위해 집을 지어주는 해비타트(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사업을 시작한 곳이다. 땅값은 빼고 건축비만 15년에 걸쳐 분할상환하면 소유권을 이전받는다. 장씨가 내야 하는 건축비는 매월 8만3000원씩, 도합 1500만원이다.
하지만 부동산 광풍이 몰아치면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는 소박한 꿈은 ‘대박의 꿈’으로 바뀌었다. 정씨의 집이 있는 지역이 개발 호재가 많은 부동산 유망지로 떠오른 것이다. 바로 500m 인근에 내년 말 7000가구를 분양하는 광석택지개발지구가, 3㎞ 전방으로는 600만평에 3만여가구가 입주하는 양주신도시가 조성된다. 2000년 전까지만 해도 거들떠보지도 않던 논과 밭이 지금은 평당 120만원을 넘어섰고, 주변 아파트 시세는 평당 900만원을 호가한다. 다가구주택 중 21평을 차지한 정씨의 집도 현재 가치로만 2억원을 훌쩍 넘어섰다. 정씨는 “모 대기업이 이곳에 대규모 공단을 조성한다는 얘기가 나오면서 집값이 술렁거린다”고 귀띔했다.
‘잠재 빈곤층’인 정씨는 중산층으로 껑충 뛰어올랐지만, 해비타트는 남모를 속앓이를 하고 있다. 당장 2년 후부터 양주군 등 첫 입주 가구에 소유권 이전을 해줘야 하는데 그동안 많게는 50배까지 뛰어버린 땅값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걱정이다. 해비타트 유종곤(40) 지원실장은 “집을 무상으로 분양해버릴 경우 소수에게만 엄청난 차익이 돌아간다”며 “보다 많은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할 봉사단체로서는 갑갑한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재개발이 확정된 서울 은평구 역촌동, 신도시 확장지인 경기도 파주, 천정부지로 땅값이 오른 용인 등에도 황당한 사례가 대기하고 있어 첫 단추를 어떻게 끼우느냐가 한국에서의 사업 성패를 가를 전망이다. 때문에 해비타트는 올초 회계사,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자체 위원회와 외부 자문단까지 구성해 문제 해결에 골몰하고 있다. 유 실장은 “부동산가격 상승분의 일부를 해비타트가 취한다고 하더라도 개인마다 경제사정이 다르고, 지역마다 상승분도 다르기 때문에 쉽지 않은 문제”라고 털어놨다.
한국해비타트의 고민은 또 있다. 땅을 기부받는 외국과 달리 기부가 모자라 자체 기금으로 땅을 사서 집을 지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다 보니 땅값이 계속 올라 기금은 고갈 위기다.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일본의 해비타트는 자국 내에서 집짓기를 하지 않는다. 부동산정책의 잘못 때문에 봉사단체조차 사업의 존폐를 결정해야 하는 중차대한 고민에 빠졌다.
임진택 기자(taek@heraldm.com)
은평구 역촌동에 있는 해비타트 빌. 한국해비타트로부터 거의 무상으로 거주지를 제공받은 저소득층이 하루가 다르게 뛰는 집값 때문에 ‘부동산 부자’가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