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연기 기자]

▲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은 사라졌지만 난곡 사람들은 아직도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80년 전북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84년부터 2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김태순씨(56)도 그 중 한 명이다.

ⓒ2006 오마이뉴스 김연기

난곡 입구 비탈길 한편에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이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무허가 판잣집이 줄줄이 늘어서 있다.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난곡은 사라졌지만 난곡 사람들은 아직도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40년 전 서울 도심에서 이곳으로 쫓기듯 흘러들어왔듯이 이들은 재개발된 난곡에서 또 다시 쫓겨 이곳까지 왔다.

지난 80년 전북 남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84년부터 23년째 이곳에 살고 있는 김태순씨(56)도 그 중 한 명이다. 김씨는 처음 서울에 올라오면서부터 이곳에 살지는 않았다. 명동의 '한일관'이란 음식점에서 3년간 일하며 그곳에서 숙식을 해결했다. 그러나 고향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그곳에 있던 자식 둘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식당을 나와야 했다.

그래서 김씨가 찾아 간 곳이 난곡이었다. 그때가 1984년이었다. 김씨가 처음 이곳에 거주한 곳은 난곡 중에서도 가장 못사는 이들이 산다는 뒷산 비탈길 맨 윗자락이다.

"요즘처럼 아침저녁으로 찬바람 솔솔 불어올 때가 제일 겁나. 연탄 들여놓아야 하니께. 옛날에 저 꼭대기까지 연탄 지고 올라간 거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려. 아무튼 그게 싫어서 나중에 요 밑으로 내려 왔응게."

"연탄 들여놓는 이맘때가 제일 겁나"

김씨의 남편은 둘째가 태어난 지 40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결국 자식 둘을 고스란히 김씨 혼자서 키웠다. 둘째 아들이 군대갈 무렵인 95년 김씨는 '아래'로 내려왔다. 둘째가 군대에 가면 연탄을 지고 올라 올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김씨는 난곡으로 이사를 온 뒤 85년부터 한 곳에서 일했다. 난곡 입구 버스종점 앞에 있는 '종점 해장국집'이 김씨가 일하는 곳이다. 김씨가 그곳에서 처음 받은 월급은 18만원. 한창 식당이 잘 나갈 때는 110만원까지 받았다고 한다.

지금은 따로 월급이 정해져 있지도 않다. 매출이 일정하지 않다보니 식당 주인과 일정 비율로 매월 벌어들이는 수입을 나눈다. 그래도 그 돈으로 두 아들을 별탈 없이 잘 키운 걸 생각하면 잘 살긴 살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예전에 여기도 좋았어. 기사들이 바글바글 했응게.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하믄서도 하나도 힘든 줄 몰랐지. 헌데 지금 봐봐. 점심 때가 다 됐는디도 손님하나 없잖여. 예전에 버스 회사가 망하면서 식당 계약을 안 했는데, 그때부터 손님이 뚝 끊겼어."

지금은 김씨의 두 아들 모두 따로 나가 산다. 첫째는 대기업 가구회사에 다니면서 안산 기숙사에 산다. 호텔 연회부에서 일하는 둘째도 직장 근처인 경기도 광명에 거주하고 있다.

"난곡을 떠난다고 뾰족한 수가 있겠어"

	▲ 난곡에서 밀려난 사람들은 그래도 인정이 차고 넘치는 달동네가 좋다고 한다. 힘들수록 사람 사는 냄새는 더 진했기 때문. 사진은 재개발 되기전 난곡 비탈길 골목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모습.
	ⓒ2006 사진가 박미향

"둘째가 내년에 장가든다고 하던데, 그땐 어떻게 같이 살랑가 모르갔어. 그래도 여길 떠나긴 쉽지 않을 거야. 난곡을 떠난다고 뾰족한 수가 있겠어."

입주권이 원천적으로 배제된 김씨와 같은 세입자에게도 재개발은 늘 특별했다. 김씨는 지난 95년 봄 '아래'로 이사 오고 난 뒤 그해 가을 그토록 지겹다는 '꼭대기'로 다시 거처를 옮겼다. 그곳이 재개발 된다는 얘기를 듣고 나중에 이사비라도 건질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2000년 들어서야 난곡이 재개발 되기는 했지만 난곡에 재개발 바람이 분 것은 그 이전인 95년부터였다. 당시 '신림1구역 재개발사업'이라는 이름 아래 주민들이 조합을 구성하는 등 재개발 사업이 순조롭게 추진되는 듯 했다. 그러나 97년 IMF를 거치면서 민간 건설업체가 사업을 포기해 재개발 얘기는 쏙 들어가고 말았다.

김씨는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2000년에 지금 살고 있는 난곡 입구 비탈길 쪽방에 자리를 잡았다.

김씨는 요즘 한창 입주기간에 맞춰 난곡 아파트로 올라가는 이사차를 볼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이 쓰리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삶의 터전이 저토록 휘황찬란하게 변했는데 김씨는 그 수혜를 누리기보다는 또 다시 그곳에서 쫓겨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인정 차고 넘치는 이곳이 좋아"

김씨는 얼마 후면 이곳에서 또 밀려날지 모른다. 난곡에서 신대방3거리역을 잇는 경전철이 들어서면 재개발이 불가피하다.

"우리가 몇 십년 넘게 발붙이고 살았응게 저렇게 또 사람들이 살 아파트가 생긴 거 아녀. 그럼 뭐혀. 맨날 우리는 이렇게 또 밀려나는데. 나중에 경전철 공사하면 또 재개발 한다던데, 그때가 되면 어디론가 방 한 칸 구하러 또 떠돌아야겠지. 시장이 왔다가면 뭐혀. 우린 또 쫓겨날 판인디.(오세훈 서울시장은 당선 직후 제일 먼저 난곡을 방문했다.)"

김씨는 그래도 인정이 차고 넘치는 달동네가 좋다. 힘들수록 사람 사는 냄새는 더 진했다. 지난해에는 신림사회복지관과 동사무소에서 전해준 연탄 덕분에 아랫목도 따뜻하게 덥혔다.

"쪽방 사람들끼리는 아침저녁으로 안부를 물어. 이곳에는 아직도 이웃의 정이 남아 있응게, 그게 살기 좋은 세상이지."